내가 사는 이야기

자격 그리고 認定

GuitarMan 2024. 11. 20. 07:39

세상을 半百 年 지나는 세월을 살면서 사람들의 이상한 심리 아니 심보를 느낀다.

사람들은 無名人이든 有名人이든 어느 누가 무엇을 함에

“자기가 뭔데 그걸 해?”

하는 풍토가 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어떤 기준(=틀)에 들지 않은 사람이 뭘 하는 것에 대해서 不滿과 是非다.

비록 無名人이지만 이야기 하나를 해보자면…

 

Campus 생활 때 활동했던 음악동아리에서 만난 어느 아우가 筆者와 슴×2한 友情을 쌓아가던 중에 모은 용돈으로 당시 80万 원 상당의 acoustic guitar를 구매했다.

그 아우가 치던 guitar가 심하게 습기를 먹으며 울림도 이상하고 악기 형태가 쬐끔 틀어지기도 했기에 그 아우 입장에선 새 guitar를 마련해야 했고 이왕 장만하는 그 guitar는 그 아우 딴에 비싼 가격대의 제품이었다.

世紀末이었던 당시는 초보자 급에서 많이 선택되는 guitar의 가격대가 20~30万 원대 정도 할 시기니까 80万 원이면 그 아우의 level에서는 나름 高價라면 高價의 제품이다.

당연히 동아리 모임 날에 새로 산 guitar를 가져갈 것이 아닌가?

부원들 대부분 새 guitar가 좋다며 같이 즐거워해주고 자기도 한 번 쳐보자며 함께 소리도 들어보고 있던 중에 그 아우보다 ‘상급자’라고 해야 할까 동아리 내에서 guitar絃 좀 긁은(?) 녀석이

“네 실력에 무슨 80万 원짜리 guitar냐?”

라는 말을 한다.

 

이런 상황은 ‘조선시대’ 史劇에서 양반들이 하층민들이 왜 글을 알아야 하느냐면서 개지랄 떨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2011년에 방송한 ‘뿌리깊은 나무’라는 drama에서 儒生들이 몰려가서 공부를 하는 노비를 무지기 패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지는 대사는

“네 놈 주제에 감히 책을 읽어?”

였다.

20世紀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뜬금없는 헛소리겠지만 당시는 그런 세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歷史를 공부하며 알고 있다.

 

헌데 그런 사고방식이 시나브로 남아있는 것인지, 개인의 猜忌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너 그거 해서 뭐할래?”

“네가 뭔데 그거를 배우려고 하냐?”

같은 얘기를 아직도 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父母가 자식에게 쏘아붙이는 경우도 적잖다.

 

筆者는 世上을 향해서 질문을 던져본다.

누가 뭘 공부하던 뭘 구매를 하던 뭘 소유하던 그거에 대해서 그렇게 하면 된다 안된다를 누가 정하냐는 거다.

왜 자기가 그렇게 판단해서 정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아니 하는 듯한게 아니라 대놓고 무시를 하냔 말이다.

 

歲月이 4半 世紀여가 흘러 당시 모은 용돈으로 딴에 비싼 guitar를 사서 열심히 취미생활을 하던 그 아우는 나름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산다.

절실한 Christian인 그 아우는 Jesus님 사랑을 表現한 ‘자기만의 gospel’도 만들어 부르며 열심히 살아간다.

 

☞ 말 같잖은 소리를 하던 녀석과는 진즉에 緣이 끊겼다.

 

참! 그 아우가 그아끄음 佛子인 나한테

“형! 제가 만든 노래 좀 들어보세요.”

라며 file을 보내온다.

宗敎를 떠나 들어보고, 부족하고 또 부족한 이 엉아는 評(?)을 해준다.

그리고 입가에 흐린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