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열릴 때...
중학교 선배가 보내주시는 좋은 글들 중에, 어떤 아지매가 학생 앞에 서서 일어나주기를 바라는 그리고 자리를 양보받지 못 하는 불만을 표하는 내용의 글이 있다.
글에서 자리 양보를 받지 못 하는 사람이 '할머니'가 아니고 '아지매'라는 것이 key point다.
우리는 시각적, 외모적으로 '아지매', '아재'로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양보를 안 한다.
그리고 그들이 보기에 몸이, 특히 다리가 불편하지 않으면 굳이 자리를 양보할 대상이 아니고 양보할 필요도 없다.
아마도 글에서 가리킨 그녀의 연배는 '할매'가 맞는지 몰라도 젊게 보이게 외모를 가꾸고 치장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젊게 보이려면 행동도 그렇게 하고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나?
讀者분들 중에 부모님께서 童顔이시거나 꾸미시기를 또래들보다 젊게 보이게끔 꾸미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로 모시고 나가면 그런 일도 없겠지만 간혹 대중교통으로 나가면 소위 '어르신' 대우(자리 양보 등...)를 못 받는 경우를 경험하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筆者의 생각은 이렇다.
그럴 때는 오히려 마음이 흐뭇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 부모님이 아직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받을 정도로 보이지 않다는 것이 자식으로서 행복한 상황이다.
반대로 내 어머니께서 마냥 고우시고 또래보다 젊어보인다고 느끼며 사는데 모시고 나갔더니 숨도 한 번 쉬기 전에
"여기 앉으세요."
라며 누가 선뜻 자리를 내줄 때 그 황당함을 겪은 분들도 계실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筆者의 어머니께선 대중교통 이용 시 자리를 양보받는 률이 半 정도다.
젊은 층의 사람들이 양보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 선뜻 양보를 할 정도로 보이지 않으시다는 것!
자식 입장에서 누가 자리 양보 좀 안 해주나 하는 마음과 아직 양보할 정도로는 안 보이시는구나 하는 흐뭇한 마음이 교차한다.
우리는 대게 외모(노화의 정도와 꾸밈새)와 서있는 자세로 자리를 양보한다.
앞에 언급한 여자는 겉으로는 '아지매'라도 속은 '할매'다.
젊게 꾸몄으면 마음도 젊게 가져야 하고 혹 누가 양보를 해주면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筆者는 어머니께 양보를 해주는 분들에게 꼬옥 禮를 갖춘다.
내 어머니께 '편안함'을 제공해주신 분들에게 아들로서 당연한 행동이라 여긴다.
가을의 문이 열린 9월에 날씨가 참으로 좋다.
여러분들도 초가을의 이 느낌을 한껏 누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