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촌수로는 2寸.
살을 붙여서 표현으로 하자면, 나(我)와 더불어 '부모'라는 나무에서 뻗어나온 다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혼자이거나 서열상 막내가 아니면 몇 살 터울이든 동생이 있다.
筆者도 동생이 있다.
'누이'다.
(※ 손 위는 '누나', 손 아래는 '누이'.)
여느 올아비들 다 그랬듯이 누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아기일 때 참으로 이뻐하고 사랑했다.
말을 하면서 '엄마, 아빠'를 하더니 筆者에게 '오빠'라고 할 때의 그 기분은 '오빠'이신 분들은 너무나 잘 아실 것이다.
여섯 살 터울이라 어릴 때는 큰(?) 차이를 느끼며 자랐다.
초등학생 - 아기, 유치원생
중고등학생 - 초등학생
재수생, 군인 - 중학생
직장인 - 고등학생, 대학생
특히 대학생이 될 때는 '과(科)장학생'으로 입학하며 아들에게 실망하셨던 부모님에게 크은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던 누이는 어느 덧 세월의 흐름에 힘입어 50대 초반에 두 女息의 엄마가 돼있다.
半百이 지난 나이에 장성한 딸들이 있음에도 어머니께는 '막내'인지라 항상 신경이 쓰이시나보다.
현실적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올아비인 筆者보다 더 성공하여 나은 삶을 살고 있건만 괜스레 걱정이 되는 건 올아비라서 그런 건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 모시고 우리 두 男妹가 단촐한 외출을 했을 때 몇 발자국 먼저 걸어가다가 📷에 母女의 모습을 담은 걸 보면 오래 전 '엄마🖐'을 잡고 아장아장 걸을 때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렇게 걷던 아기가 중학생 때 이동 시간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올아비의 부대까지 혼자 면회도 자주 오고...
당시 위병소 근무자들은 '통신대 김 병장님 여동생'이라며 부대를 향해서 걸어올 때부터 알아봤다고 했었다.
자라서 어른이 되고 부모님 슬하 때와는 달리 서로의 길을 가고 있지만 누이에게 올아비는 잠시 제쳐지더라도 어머니께서 하시는 걱정의 정도는 아니지만 올아비에게 있어 누이는 은근한 걱정 거리다.
물론 이 대목에서 筆者의 주변 사람들은
"너나 걱정해라."
라고 하실테지만...
어쨌든 돌아가신 아버지와 오늘날 혼자이신 어머니의 두 작품(?)인 우리 男妹는 한 사람은 그저 '아들'로서 그리고 '올아비'로서 살고 있지만 또 한 사람은 '대한의 어머니'로서 훌륭까지는 아니라도 열심히 살고 있다.
우리 男妹가 '삶'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소원'은 같다.
저 안방에 계신 분이 健康하게 오래 사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