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례를 행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오른손을 올려서 禮를 갖춘다.
통상 우리가 '경례'라고 하며 손을 올릴 시 군인과 민간인으로 구분하여
* 오른쪽 눈썹 끝에 손 끝을 맞추는 '거수경례' 자세.
* 오른손을 왼가슴에 얹은 자세.
筆者는...
'거수경례'를 한다.
초등학생 때 'Boy Scout' 활동을 할 때, 中高等學生 때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쓰기에 '거수경례'를 했었고 사복 착용 등교 시절에도 '敎鍊' 수업 때 제복(교련복)에 béret모를 써서인지 '거수경례'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 육군 군악대에서 복무 때의 가수 '성 시경'.
軍 전역 후에도 크고작은 행사 참여 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운동경기 관람 시 '국민의례' 때, 매년 6月 해외 참전용사 軍선배님들을 모신 🚌가 지나갈 때 筆者는 '거수경례'로 禮를 갖춘다.
민간인임에도 '거수경례'가 자연스럽고 자세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몸에 '武人의 집안 자손' 피가 흐르고 있어서일까?
어릴 때는 '김 수로왕' 73世孫이라는 걸 모르기도 했고 TV 인형극 '김 유신'을 보며 아버지께서
"저 김 유신 장군이 우리 집안 할아버지시다."
라는 얘기가 전부라고나 할까?
20代, 30代를 지나며 자신이 이런 집안의 孫이라는 것을 느꼈고 40代, 50代가 되며 집안의 先代 어른들에 비해 너무나 부끄러운 아들이라는 걸 느꼈다.
생활하며 '국민의례'에서 예를 갖출 일은 많지가 않다.
더구나 행사에 참여, 참석할 일은 더 없다.
'거수경례'를 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고보니 다음 주면 6月이다.
'현충일'도 있고 슬픈 역사의 흔적(1950년 한국전쟁)이 있어서인지 우리는 6月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筆者의 아버지께서도 '한국전쟁 참전용사'셨다.)
전역한지 30년을 넘어서 40년을 바라보는 歲月의 흐름 속에 21世紀를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6月이면 더더욱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