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리극 중에 작가가 교묘한 수법으로 여럿을 죽이는 內容이 있다.
작품평론가, 기자, 후배(♀)작가, 옆집 소년.
사건을 해결한 탐정은 앞의 세 명은 죽일 이유가 쉽사리 드러났지만, 마지막 소년에게서는 죽임을 당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 했다.
讀者들에게 물어본다.
이야기 속의 그 소년은 더구나 10대다.
그런데 죽임을 당했다.
작품평론가
: 발표하는 추리소설마다 酷評을 하여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매번 긁었다.
기자
: Interview를 하면서 한 마디 한 마디 성질을 건드리는 말투와 표현.
후배(♀)작가
: 미발표작 원고를 몰래 읽고 내용을 수정을 해서 자기 작품인 양 발표를 하여 많은 好評을 받고도 시치미를 땐 것이 여러 번.
작가 입장에서는 충분히 죽이고 싶은 대상들이다.
그런데 마지막 인물인 옆집의 소년은 연관성이 없다.
허나 사건 해결 후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그 소년이야 말로 가장 죽이고 싶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앞의 세 인물이 오히려 덤으로 살인을 당한 셈이었다.
세 사람은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당연히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이다.
오히려 그 山들을 넘어야 작가로서 입지가 선다.
그러면 마지막 그 소년은 왜...?
실은 그 소년도 소년이지만 그 집의 개(犬)가 문제였다.
이상하게도 꼭 책상에 앉아서 필기구를 잡으면 짖기 시작하여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참고 참던 작가는 그 개를 죽이기로 마음 먹으며 저지르는 김에 그 네 명을 살인의 목표로 정했다.
뭔 얘기냐?
이웃간의 생활 소음이 이렇게 심각하다는 거다.
筆者 역시 언급한 생활 소음에 마음 속에서 魔鬼와 惡魔가 자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이야기 속의 작가는 어마어마한 정신과 마음의 stress로 인해 급기야 인내의 한계에 도달해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그러나 法은 그런 것들을 認定해주지 않는다.
위의 이야기처럼 살인을 자지른 사람만 나쁜 놈 만들고 처벌하고 끝이다.
法 때문에 사회가 돌아가고 안정이 되는 건 있지만, 法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과연 法은 누구 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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